• 회사소개
  • 장바구니
  • 회원가입
  • 로그인
  • 주문확인
  • Thank u, next

    페이지 정보

    CREDIT GIANT 작성일19년02월26일 08:41 조회179회

    본문

    Thank u, next

    9ebbc7e0b609906e4010507090a3ca54_1551137984_0619.png

    나름 세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팝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뜨거운 여론몰이를 할 수 있을만한 신곡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인즉, 아무리 끔찍한 연애였다고 할 지라도 전 남자친구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웠듯이 앞으로 사귀게 될 다른 애인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을 테니 미리 감사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긍정적이고, 관대한(?) 마인드라고 칭송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을 앞두고 그녀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 위하여 꽃집에 방문하였다.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남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소비하는 습관. 이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한 감정들과 나름대로 평화적으로 공생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이다. 그리고, H와 헤어지게 되면서 생긴 습관이기도 하다. H를 만남으로써만 채워질 수 있었던 공허한 하루들에는 금새 다른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H를 만나지 않음으로써 여유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내버려두면 모일 돈들이고,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들이었으나, 나를 위한 그 모든 행위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무게로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타인을 위하여 맹목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 공허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무렴 상관이 없다. H와 헤어짐으로써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이 달콤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세상에 둘 밖에 없다는 느낌,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게끔 하던 모든 행위들은 한낮 백일몽에 불과하였다.

    나는 이미 그 꽃집의 단골 고객이었으므로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사장은 쉽게 말을 붙여왔다. 사진을 정말 잘 찍으시더라고요. 따로 배우신 건가요? 그녀는 내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는 일상 사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 전 남자친구에게 배웠어요. 스튜디오를 부업으로 했었거든요.” “, 전 남자친구요? 그랬군요. 하하.” 어쩌면 웃으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에 불과했지만, 이야기하는 분위기만큼 가볍고 기분 좋은 화제는 아니었다. 그냥 대충 둘러대어도 충분할 질문에 거짓말을 하지 못하며, 하물며 TMI(Too Much Information)를 쏟아내는 버릇은 피곤한 고질병이었다. 처음의 일주일, 한 달보다는 덜하였지만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에 대하여 반추하는 시간이 존재하였다. 나는 늘 사진을 찍고 싶어하였다. 지난 연인들 중 깊었던 관계를 가졌던 몇몇과는 대부분 사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엮어진 관계를 공유하였다. H는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그다지 화목하거나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었던 가정 환경 탓에 삶에 대한 목표라고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 돈에 시달리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바라는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낭만적인 목표를 설립해주고, 실현시켜준 것이 그였다.


    9ebbc7e0b609906e4010507090a3ca54_1551138003_7023.png
     

    보잘것없는 스냅사진들에 불과하였지만 언젠가는 좀 더 근사한 사진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에게서는 배울 것이 많았다. 카메라를 조작하는 법을 알려준 것도, ‘나만의기계가 있어야 사진을 계속 찍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것도, 보정하는 과정이나 인체의 비율에 관하여 가르쳐준 것도 모두 H였다. 그가 그 모든 것을 알려줄 당시에는 그것들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언제든지 내 편에 있어줄 사람이었고, 그가 있는 한 내가 물어보는 모든 기초적인 것들을 알려줄 것 같았다. 내가 사용법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카메라를 잡거나, 그가 알려주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는 하였던 것은 언제인가 우리가 헤어지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알고 있었다. 언제인가 헤어지게 될 거라는 것을 우리 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어느 순간에 들이닥쳐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와의 이별이 더 담담했던 것 같다. 아니다. 사실은 전혀 담담하지 못하였다.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면, 삶의 의미가 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 매년 여름마다 여기 올까?” (…중략…) 그 이후 잠시 동안, 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정적이 흘렀다. 매해 여름이란, 이런 아름다운 계절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지속될 여름이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아득하고 눈부신 말이었다. 그 동안 우리가 종종 나누기도 했던 조금은 과장된 약속들과 달리 그건 우리 모두를 미몽에서 깨울 만큼 강력한 주문이었다.

    정영수, 「우리들」 에서.

     9ebbc7e0b609906e4010507090a3ca54_1551138030_7564.png 

    남자들은 모두 지긋지긋하다고 습관처럼 이야기한다. 사람을 사귀는 일에 더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정확히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차라리 친구를 믿지 못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학창시절부터 이미 아웃사이더 기질이 충만하여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미 그들로부터 크고 작은 배신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이 한 번 정도 더 늘어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내 생활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내 생활에 대하여 조금쯤 알고 있다고 하여도 어떠한 영역은 침범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하여도 그치들을 주변에 두어야 할 지 고민할 만큼 사람이 절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연인의 경우는 달랐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개인적인 영역을 나누고 싶어하였다. 그들이 그들의 가정과 그들의 내면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들에게 나의 한 부분을 내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와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고, 헤어나기 어려운 우울의 늪에 빠져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태로 주저앉게 될 것임이 분명하였다. 왜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그렇게 무모한 것을 요구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입장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사는 것이 중요하였다. 비유적이거나 대유적인 의미의 사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사는 것, , 살아있는 것. 그렇게 사람이 지긋지긋하다는 의식에는 “fxxking ungrateful”한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시나리오에서 피해자의 역할은 언제나 나였고, 그들은 명백한 안타고니스트였다. 그러나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말의 사랑조차 없었다면 무엇이 그렇게 그들을 회상하게 하는 것인가? 그들이 베풀었었던 무한한 헌신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단순히 젊은 여자의 육체에 눈이 멀어 벌인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나 또한 지나온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 많다. (물론,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그들의 실명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무엇이 고마웠고, 누구는 어땠는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평할 자신은 없다.) 좋든 싫든 내가 만나온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였다. 국문학을 전공한 K에게 감사하다.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들여다보아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얄팍한 겉멋을 자랑하던 나는 교수님 가라사대 비전공자 학부생 주제에 처음으로 라캉을 언급하면서 디킨스의 작품을 비평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맹목적으로 집착하였던 대상인 J에게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한 번 아닌 인연에 대하여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새벽에 미련을 보였더라면 아마 지금쯤 말할 수 있는 무용담이 더 많았을 거라는 점은 아쉽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현명하고 사려 깊었던 W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사람이 얼마나 냉정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헤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뼈아프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H에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루 중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 많지만, 아직도 번번히 당신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관계에 대한 미련은 아니고, 당신에게 못다한 말들이 아쉬워서라고, 미안해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당신을 좀 더 존중했어야 하고, 당신을 좀 더 사랑했어야 한다. 그리고 물론, 당신이 만들어준 나의 모든 크레이터(crater)들에도 “fxxking grateful” 하다.    

      


    추천 1
    더 볼만한 기사
    최신 등록된 기사
     

    CRAZY GIANT. CEO.강지연 ADRESS.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위례서일로 26 라크리움 121호
    BUSINESS NUMBER. 106-13-41425 TEL.031.758.9112 FAX.031.758.9113 E-MAIL.giant@crazygiant.co.kr
    Copyright(c) 2018. GIANT. All Rights Reserved.